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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신체와 정신은 서로 분리될 수 없을 만큼 아주 긴밀히 연결되어 있습니다. 둘 중 하나에 문제가 생기면 다른 것에도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임상에서도 이러한 관련성은 자주 관찰됩니다. 예를 들어, 우울증이 발생하는 기전만 생각해봐도 우리의 몸과 마음이 얼마나 서로 깊이 관련을 맺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오랜 기간 심리적으로 압박(심리적 조건)을 받은 사람에서는 뇌의 신경전달체계에 변화(생리적 조건)가 초래되어 우울증(심리적 조건)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우울한 상태가 되면 반드시 수면장애, 식욕저하, 성욕저하와 같은 신체적 변화도(생리적 조건) 동반되기 마련입니다. 이렇듯 심리적 조건과 생리적 조건은 연속선상에 놓여 있으며 긴밀한 상호작용으로 서로 영향을 주고받습니다.
이런 이유로 마음의 병은 대부분 신체적 증상들을 같이 나타냅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마음에서 기인한 신체증상 혹은 질환의 원인을 단지 신체에서만 찾다 보니 불필요한 검사와 비효과적인 치료에 매달려 오랜 세월을 허송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설사 마음에 문제가 있는 것을 짐작하더라도 비과학적이고 잠재적으로 위험하기까지 한 요법들을 찾아가는 이들도 있습니다. 정신과 의사는 신체 질환들에 대한 과학적 소양과 정신 치료자로서의 자질을 두루 갖추도록 수련을 받은 사람들이다보니 어쩌면 가장 전인적인 치료 모델을 제공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간혹 환자분들 중에는 자신이 겪는 증상들은 정신적(심리적)인 것, 즉 비물질적인 것인데 그게 어떻게 물질인 약을 먹어서 좋아질 수 있느냐고 고차원적인 질문을 던지는 분들도 계십니다. 어찌 보면 말이 안 되는 것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인간의 신비한 뇌를 조금만 이해하신다면 그런 궁금증이 해소될 수 있습니다.
최근에 뇌신경 과학과 정신의학의 눈부신 발전에 힙 입어 밝혀지고 있는 바에 의하면, 우리 인간의 뇌는 그 안에서 비물질적인 정신 현상과 물질적인 생리 현상이 교접하며 신묘하게 어우러지는 매개체입니다. 수백억내지는 수천억 개의 신경세포 다발로 이루어진 뇌는 마치 우주의 신비를 방불케 하는 자체의 질서와 조화 속에서 아주 세밀하고도 정확한 생리화학적 조절이 이루어지고 있는 기관입니다.
신경세포들은 다양한 종류의 신경전달물질과 신경호르몬을 통해 상호간에 연락을 이루며, 특정 부위의 신경세포들간의 네트워크를 통해 이루어진 신경회로는 다양한 정신현상의 기질로서 인정을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이유에서건 뇌의 특정부위에서의 화학적 조절에 불균형이 초래되면 그것이 여러 가지 정신 증상(예, 감정의 변화와 행동의 변화)을 유발하는 것입니다. 이는 마치 당뇨병이 인슐린이라는 호르몬의 장애로 인해 혈당 조절이 안되는 것과 유사합니다. 당뇨병을 치료하기 위해 인슐린이나 혈당강하제와 같은 화학적 균형을 복원시켜 주는 약물이 필요하듯이, 정신과에서 사용하는 약들도 정신 증상들을 회복시키기 위해서 그것을 초래한 화학적 불균형을 교정해주는 기능을 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뇌를 생각할 때 더욱더 놀라운 것은, 단지 물질인 약물을 통해 뇌의 생화학적 조성을 변경시키는 것만 가능한 것이 아니라, 정신치료와 같은 비물질적인 노력을 통해서도 우리 뇌의 화학적 조성과 뇌의 미세 구조가 변화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창조주께서 만드신 우리 인간의 뇌는 실로 경이롭습니다.
우리의 의식이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증상들(우울, 불안, 불면, 불쾌 등)을 표면적인 문제라고 한다면, 우리에게 의식화되지는 않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 표면적인 문제들을 조장하고 발생시키는 보다 근원적인 문제들은 이면적인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심리적 고통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면적 문제에 대한 접근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표면적인 문제들은 약물치료 등으로 쉽게 치료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면적 문제가 상존하는 한 표면적 문제들은 언제든지 재발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면적 문제를 치료하는 길이 바로 정신치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신과 치료에서 약물 치료는 매우 중요한 요소지만 나름대로의 한계가 있습니다. 약물이 내 모든 심리적 문제를 해결해 줄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약물치료는 보조적인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좋지만, 그렇다고 해서 약물치료의 중요성이 간과되어서는 안 됩니다. 현재까지는 약물치료가 효과와 비용경제적인 면을 고려할 때 가장 우수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약물보다도 더 중요한 요소가 있습니다. 바로 내 자신의 정신을 온전한 상태로 지탱해주는 요소들을 보완하고 확충해 나가는 삶의 방식을 찾는 것입니다.
정신과적 문제들은 오랜 시간 동안 나와 환경과의 비적응적 상호작용의 결과로서 발생된 것이라고 가정을 해보면, 그렇게 되도록 내버려 둘만큼 자신도 인식하지 못한 자기 문제가 있었다는 말이 됩니다. 중이 제 머리 못 깎듯이, 문제의 발단이 되고 고착되도록 만들고 있는 자기 요인을 찾아 스스로 해결해 가기란 아주 어려운 일입니다.
사람들은 자기 모습을 자기가 가장 잘 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자기가 보지 못하는 자기의 면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나를 정말로 힘들게 하는 요인들이 바로 거기에서 유래되는데도, 정작 나 자신은 볼 수 없는 그 이유로 자가 해결이 어려운 것입니다. 정신치료란 치료자와의 만남을 통해 자기가 보지 못하는 그 면을 볼 수 있도록 도움을 받는 것입니다. 거울을 통해 흐트러진 내 모습을 고치듯이 정신과 의사와의 만남을 통해 내 심리적 고통의 본질을 알아갈 수 있다면 심리적 안정을 회복하는데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심리적인 문제는 크게 보면 대인관계에서 발생하는 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를 힘들게 하는 슬픔, 외로움, 우울함, 불안함, 분노, 상실감 등이 거의 전적으로 나와 관계를 맺고 있는 다른 사람들과의 사이에서 발생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장과정 중에는 부모 및 형제자매, 결혼해서는 배우자 및 배우자의 부모, 학교나 직장에서는 동료 및 선후배 등 모든 대인관계에서 겪는 좌절과 상처가 우리 마음에 병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주 양육자(흔히 어머니)와의 관계가 한 개인의 심리적 발달과 성격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그 관계의 양식에서 파생되는 여러 가지 문제들이 결국은 그 사람의 심리적/정서적 특성들을 결정짓게 되는 것입니다. 달리 말하면, 어려서 부모와의 관계가 그 사람의 나머지 인생의 대인관계의 기틀을 형성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어릴 적 부모와의 관계가 순조롭게 이루어진다면 기초가 튼튼한 공사와 같이 견실한 심리적 기반을 형성할 수 있게 되지만, 만일 부모와의 관계에서 지장을 겪은 사람이라면, 심리적 기반 어딘가에 취약한 부분이 생기게 되고 그것이 후속적인 노력으로 충분히 방어가 되지 않은 채로 지내다가 어느 순간에 감당하기 어려운 스트레스 상황에 놓이게 되면 정신적 증상이 발현될 수도 있습니다. 심리적 문제들이 대략적으로 관계에서 발생된 것이라고 볼 때, 그 해법 또한 관계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정신치료자(정신과 의사)는 사람의 마음에 대해 성실한 자세를 지닌 사람입니다. 정신치료를 통해 자신의 관계 양식을 되짚어 봄으로써 새롭고 긍정적인 대인관계의 기초를 쌓아 가실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겪는 몸과 마음의 문제들에 대해서, 간혹 해결책이 있을 것 같지 않은 문제들에 대해서조차도 마음을 열고 상담과 치료의 자리에 나오신다면 좋은 해답을 얻으실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약물로써 때로는 정신치료로써 정신과 의사는 이 두 개의 강력한 치료 도구를 가지고 심신의 문제들 때문에 고통 받으시는 분들에게 도움을 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