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서울의 모 아파트 부녀회 회원과 주민 수백명이 아파트 부근에 들어서게 될 노인요양병원 신축을 반대하며 구청 앞에서 ‘혐오시설 허가를 취소하라’는 시위를 벌였다고 합니다. 이유인즉슨 노인요양병원이 들어서게 되면 치매노인들이 오가고 장례식 차량이 들락거리면 그 일대 집값이 떨어질 것을 우려하는 것이랍니다. 참으로 기가 차고 안타깝기까지 한 소식이지만 우리 사회가 노인문제를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고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 예라고 생각합니다. 나라 전체가 부동산 때문에 큰 홍역을 치루고 있는 터라 이해 못할 일도 아니지만, 이제 곧 닥칠 자신들의 미래를 전혀 예측하지 못하는 너무나 근시안적인 태도라고 생각됩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이게 일부만의 생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대놓고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없지만 놀랍게도 우리 사회 전반에 노인은 무가치한 존재라는 생각이 퍼져있습니다.
지역 정신보건센터와 공공의료사업에 관여하면서 직간접적으로 확인했던 지역내 어르신들의 비참한 생활을 떠올릴 때마다 가슴이 아팠었습니다. 개인당 국민소득 2만불 시대를 앞두고 있다지만, 그 수치가 얼마나 허구인지를 느끼게 해주는 상황을 많이 목격했었습니다. 잠긴 문 안에서 때 맞춰 넣어주는 밥으로 연명하면서 대소변과 파리 떼로 뒤범벅된 채 사시던 치매 어르신, 종양 때문에 눈알이 돌출되어 흉측스런 모습에도 병원에 갈 돈이 없어 그저 고통을 감내하시던 어르신, 구석기 시대를 연상시키는 토방 안에서 가축만도 못한 삶을 사시던 어르신들. 인간의 존엄성이나 생명의 고귀한 가치가 휴지 조각처럼 내팽개쳐진 노인분들의 현실을 보면서 가슴이 미어졌었고, 우리로써는 뭐를 더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는 사실에 더욱 더 서글펐던 기억이 납니다. 공공의료사업 팀원들끼리는 농담처럼 이런 현실을 방송에 터트려서 온 국민이 현실을 바로 보게끔 각성시켜야 한다는 말로 화를 식히곤 했었습니다. 정말 그래야 해결이 된다면 그랬겠지만, 사람들의 의식은 그렇게 해서 변화될 수 있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고령화 사회가 되면서 노인문제가 화두가 되고는 있지만, 아직도 진정으로 노인문제에 관심을 기울이지 못하고 있는 정부와 국회에서 내놓을 수 있는 제도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지금으로서는 지극히 행정편의주의와 전시효과를 노리는 것들뿐입니다. 제도적인 허점을 보완하고 현실 상황과의 간극을 메울 수 있는 게 결국 민간 차원에서의 노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점차 증대될 수밖에 없는 노인문제를 위해 정부차원의 대책을 지속적으로 촉구하고, 사회적 장치를 마련하기 위한 노력에도 다같이 힘써야겠지만, 무엇보다도 먼저 나 스스로가 잠재적 노인임을 자각하고 이제 곧 닥칠 내 노후를 대비하는 마음으로 우리 앞에 놓인 이 숙제를 풀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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