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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열정지기 |
날짜 |
2005-11-28 오전 9:40: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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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첨부파일 |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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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
74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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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TV 생방송 중에 어처구니 없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인디 밴드의 멤버들이 공연 도중에 옷을 벗어 그대로 성기를 노출시킨 사건이었다. 이 일로 당사자들은 구속되고 방송국 관계자들은 징계를 당하고 온 매스컴들은 한바탕 법석을 떨었다. 지켜본 사람들의 반응도 꽤 과격했던 것 같다. 실제로 인터넷 게시판들이 행위 당사자들에 대한 비난과 욕설로 도배되기도 했었다. 이들의 행동을 옹호할 생각은 없지만, 조금 다른 시각에서 이 문제를 다뤄 볼 필요성은 느낀다.
우리가 바디랭귀지(body language)라고 부르는 인간의 몸짓이나 행위는 어떤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그렇다면 공중 앞에서 옷을 벗고 성기를 노출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공공 장소에서의 성기노출은 거의 대부분의 사회에서 금기시되고 있는 행동이지만, 그것을 크게 ‘성적 행동’과 ‘문화적 행동’으로 대별해 볼 수 있고, 행위의 성격에 따라 사회적 용인의 정도에 차이가 있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즉 노출증에서의 성도착적 행위에 대해서는 성범죄로 간주하지만, 문화에 따라서는 사회적 저항의 한 형태로도 이해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노출증 환자들은 자신의 성기를 노출시켜(flashing) 이성을 경악시킴으로써 성적 흥분과 만족감을 얻기 위해서 그런 행위를 벌이는 것이며, 그들은 돌아가 놀라 당황하는 여성의 모습을 회상하면서 마스터베이션 또는 성관계를 해야 비로소 절정에 도달할 수 있게 된다. 그들에게 있어서 성기노출은 어디까지나 ‘성적 행동’인 것이다.
같은 성기노출이긴 하지만, 이번 카우치 멤버들의 행동이 노출증 환자들의 변태적 행위와 같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와는 사뭇 성격이 다른, 오히려 사회적 혹은 성적 억압에 대한 저항을 표현하는 ‘문화적 행동’쯤으로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단지 그들에게 문제가 된 것은 공중파의 특성을 너무 몰랐다는 점과 자신들의 행동이 어떠한 파장을 자신들과 사회에 미칠지 충분히 검토할만한 현실감각이 없었다는 점이다.
성기노출을 포함하는 누드행위의 문화적 증거들은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강한 거부감을 표시할 때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 드는 동작은 성기를 상징화하는 것이다. 외국 영화에서 심심찮게 목격하는 바지를 까고 엉덩이를 들이미는 행위(mooning)는 조롱이나 야유를, 발가벗고 남들이 보는 앞에서 뛰어 다니는 행동인 스트리킹(streaking)은 호소나 시위의 적극적 표현으로 인식될 때가 많다. 그 유명한 미시건 대학의 ‘Naked Mile’ 행사는 매년 수백명의 졸업생들이 최종 종강일 전야에 떼를 지어 발가벗고 1마일 가량을 뛰는 것으로 이 학교의 비공식적 전통이 되어버렸다. 또 동물보호론자들의 모피 반대 시위 현장에 의례히 등장하는 것이 누드인 것을 보더라도 발가벗는 행위에는 단지 성적인 의미만이 포함된 것은 아님을 알 수 있다.
‘문화적’이라는 말에 거부감이 들지도 모르지만, 동시대를 살더라도 문화는 다를 수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인디 문화라는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우리가 대중문화에 너무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그것이 마치 사회의 기준인 것처럼 생각되지만, 밋밋하고 획일적인 대중문화로써는 문화적 욕구를 채울 수 없는 사람들, 도리어 대중적인 것에 길들여 지는 것을 거부하고 적극적으로 자기들만의 즐거움의 영역을 구축하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디 문화에는 일정 부분 반사회적 혹은 비사회적 요소들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카우치 멤버들이 늘 공연하고 했던 홍대 앞 인디 문화도 그런 기반 위에서 형성된 것이다. 인디 문화란 어찌 보면 압도적인 대중문화에 대한 반작용으로 발생되는 면이 있고, 그런 속성상 기존 질서에 대한 거부 내지는 저항의 의미가 함유할 수밖에 없는데, 이 때문에 대중들로부터는 오해와 편견을 사기도 한다. 짐작컨대, 두 젊은이가 자신들에게 찾아온 일생일대의 기회를 그렇게 행동해 버림으로 날려버린 데에는 누구나 한번쯤 줄을 대고 싶어하는 굴지의 방송사가 제공하는 입신양명의 찬스를 거부하고 철저하게 저항하겠다는 인디 정신의 의지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자로 잰듯한 고도 효율성의 시대에 예술가가 옷을 벗는다는 것, 그것은 숨막힐 듯한 합리성에 대한 근원적인 거부이자 자연 그 자체의 본능적인 회귀를 표출하고자 하는 극한적인 표현 방식 중의 하나일 뿐"이라는 한국대중음악연구소장 강헌의 논리가 설득력 있게 들린다. 그는 이 두 젊은이의 '객기'가 결코 권장할 수는 없지만 문화적 표현의 다양성에 대한 관용의 시선으로 봐 줄 것을 호소하고 있다.
이번 일로 우리 젊은이들의 음지문화가 말 그대로 노출되었다. 항간에는 버릇없는 세대에 대한 경계태세를 강화해야 한다는 식의 소리도 들린다. 그런 주장들에 대해 이해는 가지만 실효를 거둘지는 의문이다. 단속만이 능사는 아니며 억압은 또 다른 음지문화를 양산할 따름이다. 대중매체가 주도하는 대중문화에는 내용과 형식면에서 한계가 있고, 보다 풍성하고 순수한 문화의 창출을 위해서는 다양한 하위문화에 대한 이해와 장려가 필요하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도 고안해 내야 하겠지만, 무엇보다도 우선시되어야 하는 것은 다양한 스펙트럼의 문화를 넉넉히 수용할 만큼 우리의 마음이 열려 있어야 할 것이다.
배경도 (신경정신과 전문의, 열린정신과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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